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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교토 그 네번째

2004년 교토 그 네번째
Photo by yousef alfuhigi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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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 처음 쓰고 2023년에 다시 추가했다. 처음 쓴 글은 인용문으로 구분한다.

도에이 우즈마사 영화촌

영화촌이라길래 상당히 기대하고 갔었다. 결론은 기대한만큼 아픔도 크다는 점을 다시 실감했다는 것. 교토에서 방문했던 곳 중 제일 비싼 입장료에 제일 심심했던 곳. 누가 간다면 적극 말리고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사진은 꽤 많이 남겨왔다.

'영화'촌이라는 이름 때문이었는지, 헐리우드 스튜디오 같은, 세트장에 영화 촬영 시설까지 갖춰진 모습을 기대하고 갔는데 그냥 평범한 테마파크여서 실망이었다. 그때 받은 인상이 너무 별로여서였는지 혹시 지금은 망하고 문닫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검색해봤더니 예상과 달리 아직도 성업 중이었다. 오히려 그 사이에 에반게리온, 바람의 검심, 센과 치히로 등 나한테도 익숙한 컨텐츠들이 많이 추가되어서 너무 슬펐다.

나한테 일본의 테마파크란 80년대 고도성장 시기에 여기저기서 우후죽순 생겨났다가 버블이 꺼지면서 같이 사라진, 퇴물 폐허 같은 인상이었다. 이번에 조사하면서 알게 됐는데, 도에이 우즈마사는 1975년 11월에 문을 연, 의외로 오래 된 곳이었다. 내가 갔을 때 이미 30년 가까이 영업을 하던 곳이었으니.

'도에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거대 영화/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도에이의 교토 스튜디오에서 운영하고 있다. '우즈마사'는 지역 명이다. 소개문에는 '영화 세트장의 일부는 개방'한 것이라고 했는데 내 눈에는 만족스럽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때 그 시절'의 목욕 시설과 화장실.
처음 봤을 때는 '끙아 하는 장면도 찍는단 말인가!'하며 경악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변태같은 것보다는 화장실에 볼일을 보려고 방심하는 사이에, 아래 칸에서 닌자가 숨어있다가 칼로 푹 찌르는 장면을 찍으려 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찌르는 쪽이나 찔리는 쪽이나 (...)

일본 영화 소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괴물! 시간에 맞춰 물속에서 나온다.일본인들의 괴물 사랑(!)은 진정 이해가 불가능하다.
일본 낭인들과 여닌자. 이들은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같이 찍어준다.

명색이 '영화촌'이라서, 우리나라 민속촌과 다르게 '영화 속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도에이는 특촬물도 많이 찍기 때문에 괴물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닌자 모형도 전시해놓고, 에도 시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관광객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어주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내가 갔을 땐 그게 다였다. 이번에 우즈마사 최근 사진을 봤는데, 사진 촬영 외에도 칼을 멋있게 휘두르는 모습도 보여주더라. 아마 바람의 검심 영향일 것이다.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줄타는 닌자 모형.
멀리서 보면 그럴 듯하게 움직인다.

천천히 움직이기 때문에, 두번째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면서 상상을 해봤다. '난 진중한 닌자. 얼굴의 무뚝뚝한 표정을 눈끝 하나 안바꾸고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포커페이스. 그동안 건방지게 굴던 에도 놈들에게 한방 먹이고 싶어서 대도쿄 트랜스포트를 털기 위해 잠입한다. 아래에 코 골며 자고 있는 트럭 기사는 내가 네놈 머리 위에 있는 걸 꿈에도 모르겠지?'

헥헥... 드디어 교토 사진들은 여기서 끝.
전에도 그렇지만, 교토에서 찍은 사진들은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사람 질리게 만든다. 그만큼 다닐 곳 많고 찍을 것 많은, 그야말로 '관광지'이다.우리나라에도 세계적으로 관광객들을 끌어모을 수 있는 유명한 곳이 탄생하길 빌면서...

위 마무리 글을 쓴지 거의 20년이 흘렀고,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해외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있고, 지역 곳곳에서는 특성 있는 축제들의 지명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다. 처음에 지하철에서 지도나 관광책자를 손에 들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해외 배낭족들을 보며 '공기도 나쁜 곳에 왜 왔을까, 그냥 콘크리트 건물만 즐비한 곳에 왜 왔을까'하며 의아해 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우리를 평범하게 둘러싼 광경도 저들에게는 못보던 것, 신기한 것,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K-머시기'하는 한국 말고도 지구촌의 다양한 사는 모습 중 하나로서의 한국도 알려졌으면 좋겠다.

— END OF POST.